『바닥』 톺아보기

바닥 2020, 여름호

다시 여름이 왔지만 세상은 코로나19라는 이름을 지닌 바이러스로 인해 여전히 아프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바이러스의 공포는 두렵고도 위험하다. 매거진을 만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사회와의 소통인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만남 자체를 힘들게 했다. 그러면서 문득, 코로나19가 우리에게 혹독한 고통을 통해 가르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 ‘사람’이란 존재를 유지해가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것. 바이러스는 경쟁하는 자들에게는 가차 없이 다가가서 그들을 숙주로 삼지만 협력하는 이들에겐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인한 아픔의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것. 그 이야기를 <바닥> 여름호에 담았다.

글머리 실린 장하빈 시인의 시에서 시작하여 ‘視線 editor's eyes’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든 새로운 풍경에 대한 이야기와 그 아픔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함께 걸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담았다.
‘사람과 풍경 Human&Scenery’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픔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임을 보여주는 사진, 대구 근대골목의 쓸쓸한 풍경, 그리고 강제로 격리되어버린 학교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이 보기 Inter-view’는 글쓰기라는 과정을 통해 상처에 정면으로 대응했던 이청준 소설가와의 대화를 통해 상처 치유의 본질적인 풍경을 그렸다.
‘블랙박스 Blackbox’는 팬데믹이라는 상황 속에서 과연 언론이 사실 보도라는 모토를 지켜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주제를 몇 편의 영화를 통해 다루었다. 
‘바닥 인문학 Badak-humanitas’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대재앙과 결부된 다양한 아픔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오래된 미래 ancient futures’에는 ‘불가사리 이야기’,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금융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우애와 연대의 인문 공간으로 새로운 인문학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김해 인문책방 ‘생의 한가운데’, 광주 양림문화역사마을에서 윤회매라는 새로운 예술을 통해 과거와 현대가 만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는 ‘윤회매문화관’의 풍경을 담았다.
‘冊뜨락 book-review’는 아픔과 상처에 관련된 북 리뷰를 담았고, ‘인문 동아리 Humanities Club’에서는 책이 마음에 닿는 온도라는 뜻을 지닌 김해 ‘책마온’ 책 동아리의 이야기를 감았다.

바닥 2020, 봄호


다시, 2020년 봄날이 왔다. 잘 견뎠고, 그 견딘 시간이 고맙다. 그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人間]들에게 고맙다. 


글머리 실린 김춘수 시인의 시에서 시작하여 ‘視線 editor's eyes’에는 다시 시작되는 <바닥>의 마음과 함께 걸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담았다.
‘사람과 풍경 Human&Scenery’은 다시 봄이 오는 을왕리의 바다 풍경, 산티아고 순례길, 달빛이 비치는 봄밤의 진솔한 대화를 담았다.
‘사이 보기 Inter-view’는 그림과 신화를 통해 ‘당신을 보고 있는 나를 다시, 봄’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고가 담겨 있다.
‘블랙박스 Blackbox’는 세속의 날카로운 시선에 의해 조금씩 오염되는 사랑의 문제를 다루었다.
‘바닥 인문학 Badak-humanitas’에는 <바닥> 창간 1년에 대한 독자들의 시선, 그리고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인문학적인 에세이를 담았다.
‘오래된 미래 ancient futures’에는 달구벌(대구)라는 보수적인 도시에서 힘들게 출판을 통한 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학이사’, 대구 최초의 시인 전문서점인 ‘시인보호구역’, 그리고 동네 사랑방처럼 따뜻하게 사람들과 함께하는 ‘수공방’ 등의 풍경을 담았다.
‘冊뜨락 book-review’는 ‘따스한 봄날, 기억하고 싶은 책’이란 제목으로 읽고, 쓰는 과정을 담은 북 리뷰 네 편을 실었다.
‘인문 동아리 Humanities Club’에서는 포항공과대학교 독서 동아리 ‘묘책’의 동아리 소개 및 책읽기 현장을 그대로 담았다.



다시, 2020년 봄날이 왔습니다. 잘 견뎠고, 그 견딘 시간이 고맙습니다.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이지만 ‘아무나’ 걸어갈 수는 없는 길을 찾아 걸었습니다. 그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人間]들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려준 인간의 무늬[人紋]가 고맙습니다. 걸어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봄날이 가는 것이 반드시 슬픈 것만은 아님을, 그 아름답고도 설레는 기다림의 시간이 다시 봄으로 온다는 것을…(7p)

저마다의 바다는 모두 달라도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저 하나의 풍경이 된다. 익명성의 너와 나는 모래알처럼, 바람처럼 혹은 한 마리 갈매기처럼 세속의 기준으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을왕의 넓은 품에서 채우는 것도 비우는 것도 아닌 그저 그곳에 머무는 동안의 유예면 어떠랴.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다만 쉼표여도 좋은 것을.(14p)

“그러나 나는 저주의 운명으로부터 도망쳐 나오다가 결국 스스로 운명에 갇힌 자가 되어버렸소. 그리하여 나는 두 눈이 있어도 나 자신을 제대로 못 보는 거추장스런 눈동자를, 스스로 빛을 보지 못하도록 도려내었소.”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마지막 말을 완성했다.
“나는 신을 의심하오. 나는 나를 믿을 뿐이오. 내가 두 눈을 뽑고 가시밭길을 걷는 것도 내가 스스로 내린 단죄요.”(49p)

지금도 이름도 없이 말을 하지 못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차가운 심장들 때문에 죽어가고 있어요. 언젠가 「이터널 션샤인」이라는 영화에 ‘네가 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라는 댓글이 달린 걸 읽었어요. 여전히 이렇게 따뜻한 심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나는 믿어요. 지독하게 망가져 버린 사랑을 복원해서 서로를 배려하고 보듬어주는 시간으로 2020년이 다시 사랑하는 풍경을 꿈꾸면 좋겠어요.(61p)

바닥을 보는 것은 하늘을 보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호수에는, 바다에는 하늘이 비치지만, 땅은 하늘을 비출 수 없을 것이라고. 그것이 변하지 않는 진실인가? 그러나 생각해보라. 당신은 물리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살았는가? 물리의 법칙만이 세계를 만들지 않았다. 봄春에 봄(Seeing)을 생각하는 것은 물리가 아니다.(p.)

책으로 인해 내가 살았으니 이제 책에게 뭔가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특히 대한민국의 출판시장 역시 9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보니, 지역에서 출판업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부분을 넘어설 수 있는 방안도 찾고 싶어요. (107p)

“시인보호구역에는 소액 후원을 해 주시는 분이 많아요. 그분들 중에는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시고요. 함께 시를 나누는 원로분들도 계시고, 행사에 애써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라디오 시인보호구역>이라고 문학청년들, 아시당회원분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고, 문예지도 계속 만들고 있고요. 젊은 친구들 문학동아리도 있고요. 곳곳에 흩어져 있죠. 문 닫기 전에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주셔서 감사하고요. 비록 공간은 당장 못 만들지만, 기존에 같이하는 그룹 안에서 마음을 나누고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118p)


                                                                          바닥 2020, 봄호 본문 중에서...



바닥 2019, 겨울호


겨울이 창밖으로 달려왔다. 겨울은 차갑다. 쓸쓸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지독한 계절이다. 욕망으로 가득 찬 세속의 풍경은 겨울이 되면 더욱 을씨년스럽다. <바닥>은 가을 내내 세속의 풍경과는 달리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랑하고, 거기에서 만들어진 온기를 이웃과 나누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아직은 사람들이 지난 날의 풍경으로 살아가는 골목길을 누볐다. <바닥> 겨울호는 그 보고서이다.
 글머리 실린 장하빈 시인의 아픈 시에서 시작하여
 ‘視線 editor's eyes’에는 힘들게 1년을 버티면서 매거진을 만든 수인 주간의 마음과 함께 고마운 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사람과 풍경 Human&Scenery’은 겨울 골목길과 북촌의 문화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부부의 진솔한 대화를 담았다.
‘사이 보기 Inter-view’는 <피아니스트의 전설>에 나오는 맥스 튜니와의 대화를 담았다. 사람들과의 일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골목길에 대한 깊은 천착이 담겨 있다.
‘블랙박스 Blackbox’는 몇 달 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조국 사태로부터 시작하여 선출된 권력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문제를 다루었다.
‘바닥 이야기 B-story’는 골목길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담았다.
‘인문학 난장 humanitas-Archive’는 인문학 관련 글쓰기 아카이브로 해림 한정선 화가에 대한 비평, <에밀>에 대한 에세이와 함께 시 한 편, 그리고 고등학생의 글을 담았다.
‘오래된 미래 ancient futures’에는 원주라는 지방도시를 그림책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원주 그림책연구회’, 책방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터득골북샵’, 그리고 손맛으로 장맛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지리산 콩마을’ 등의 풍경을 담았다.
‘冊뜨락 book-review’는 ‘겨울에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란 주제로 북 리뷰 다섯 편을 실었다.
‘인문학교실 Humanities Room’에서는 지난 호의 질문에 대한 다양한 리라이팅과 답변, 그리고 ‘하늘을 날고 싶은 거북이’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실었다.
발행인인 도서출판 피서산장 박상욱 대표는 “힘든 상황에서도 <바닥>이 1년을 걸었다. 이런 철학을 담은 매거진이 많지는 않다. 그 자부심으로 <바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읽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바닥>을 발행할 예정이다. 많은 이들이 <바닥>에 더 많은 관심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나의 바닥이 당신의 바닥과 만난다. 바닥들의 소통과 연대, 누군가 우뚝 높아지고자 한다면 우리들은 지평선보다 더 아득하게 넓어지자. 누군가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자 한다면 우리들은 비포장길보다 더 울퉁불퉁해지자. 누군가 바닥을 측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심해(深海)보다 더 깊어지자. 모든 삶은 바닥에서 시작되고, 진실한 사상의 거처는 허공이 아닌 바닥이었나니, 삶을 지독히 사랑하는 우리, 서로의 바닥이 되자. (뒤 표지글)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괜찮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그들이 지배하는 조직의 논리에 따라 해변에 쓸려온 미역줄기처럼 변방으로 쓸려가는 모든 사람들이 쉴 수 있고, 그 힘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곳, 그런 길이 언젠가는 만들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꿈은 그런 것이니까요. 수인(p.8)

골목길하면 떠오르는 감정들이 있다. 친근하고 따뜻한, 금세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잊고 있었던 반가운 친구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우린 왜 그토록 소중했던 추억들을 놓치고 살고 있는 걸까. (p.14)

누구의 삶이든 시대가 만든 풍경을 품는다. 누구의 삶이든 역사를 품을 공간을 갖는다. 골목은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 (p.28)

골목을 남겨둔다고 해도, 골목들이 예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섬처럼 떨어져 있겠지요. 그 안의 삶들도 온전히 지켜지기는 힘들 겁니다. 그래도, 공간이 지켜져야 삶이 지켜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54)
 
정서를 공유할 매개인 사람이 떠나버린 공간을 골목이라 할 수 없다. 골목이란 말은 이제 점차 사라져 간다. 더는 입에 올리지 않는 사어처럼. 그 대신 거리는 넘쳐난다. 바야흐로 거리의 시대이다. (p.92)

골목길에서 느낀 편안함은 내가 잃어버렸던 무엇이었을까. 시간의 풍화작용을 이겨낸 골목길에는 새것이 주지 못하는 깊이와 그 길만의 위엄이 있었다. 골목길의 역사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 골목을 유지하고 보존한다는 건 시간을 거스르고 역행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래된 골목을 지워버려야 할 주름으로 생각한다면 골목의 미래는 없다. (p.95)

어느 익숙한 공간에서 저녁 빛처럼 한순 간에 흩어지고 마는 존재들. 그 존재들의 감추어진 의미와 그들의 말들, 인간의 동물성 속에 파묻힌 신성神性, 일상에서 흘리거나 놓쳐버린 줄도 모르 는 것들, 영혼의 눈동자와 깃털, 비늘이나 발톱, 현실에서 꺾인 꽃모가지, 발 에 밟혀 으스러진 것, 코르크 마개처럼 틀어 막힌 비명, 가면에 가린 영롱한 빛과 슬픔의 물기를 그리겠다. (p.107)

언젠가 한 인간 개인이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하더라도,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 부터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인간도 처음에는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한다. 우리는 길러진다. (p.119)

우리는 다들 알을 깨고 살아간다. 경험은 부화다. 누구나 부화하게 되어 있다. 부화해서 날갯짓을 하면 독수리가 될 것요, 걷기만 하면 병아리가 될 것이다. (p.131)

하나의 문화가 탄생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스타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구성요소들이 각자의 역할을 조화롭게 수행하여야 꽃으로 필 수 있습니다.  (p.142)

많은 담론들이 무성하지만 지역은 그것을 실현하는 곳이므로 아는 것이 행해지는 플랫폼으로서의 자리매김이 터득골북샵의 대안이랍니다. (p.153)

장은 한 번 담그면 오래 먹는 저장식어서 정성을 다해 담고 간수한다고 해요. 또한 식초는 오래 되면 술이 됐다 초가 됐다 결국 물로 돌아간다고 하죠. 삶도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p163)

부서지기 쉬운 것들은 말을 통해 전달에 전달이 거듭되어져야 한다. (p.175)


                                                                        바닥 2019, 겨울호  본문 중에서